
“'사람으로 태어나 의로운 일 한 가지는 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오래 사는 도라지 재배를 결심했습니다. 홍수에 떠내려가는 사람 하나만 구해도 칭찬 받을 만한 일인데, 도라지를 재배해 많은 사람을 살린다면 진정 가치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 고통을 참아가며 한평생을 바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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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당시 이성호 원장의 나이 스물여섯 살,‘ 장생도라지’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일. 소금 한 자루와 괭이를 메고 지리산 골짜기로 거처를 옮겼다. 오직 도라지 생각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각오였다. 원시인에 가까운 생활을 외롭게 견디며 도라지 연구에 몰두했다.
5년째 되던 여름, 풀도 자라지 않는 척박한 땅에 옮겨 심었던 도라지에서 새순이 무성하게 자랐다. 기적 같은 일이었지만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도라지는 땅의 기운을 먹고 사는 식물로 좋은 거름이나 비료가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45년 집념으로 탄생한 장생도라지
장생도라지 재배에 성공한 뒤 꾸준히 재배면적을 계속 넓혀 나갔다. 찾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예상에서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바람일 뿐, 사람들의 관심은 예상 외로 적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효능을 입증할 명확한 증거가 없었고, 장생도라지에 대한 인식이 거의 전무하던 때였다.
가족까지 버리면서 거의 한평생 도라지만 생각하며 보낸 15년의 세월이 허무하게 느껴져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던 중 20년근과 21년근 도라지의 색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을 확인한 뒤 전문가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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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나같이 냉담한 반응만 보일 뿐 적극적으로 도와주려는 이는 없었다. 포기하지 않았고 수소문 끝에 경상대학교에서 성분 분석을 받았다. 드디어 1991년 11월 국내는 물론 세계 최초로 식물재배법으로 유례가 없는 발명특허를 취득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장생도라지 연구에만 몰두 했던 그는 체계적인 조직 운영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
그러다 보니 오랜 시간 쌓인 부채도 만만치 않았다. 자본금이 3억5000만원이었던 부채가 28억원에 달했고, 월 금융비용만 7000~8000만원이 들어갔다. 그 상태로 6개월도 버티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때 장생도라지의 구원투수로 화려하게 무대에 선 이가 바로 이 원장의 아들 이영춘씨였다. 고집스럽게 장생도라지에만 매달려 온 아버지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이 원장의 장인정신을 존경하게 된 그는 아버지의 사업에 대해 진지하게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당시 그는 삼성항공(현 삼성테크원)의 수석 인사과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주위의 엄청난 만류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사표를 낸 것은 장생도라지의 항암, 기관지염, 당뇨치료 효과에 대한 자신감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하던 사람들도 오래 사는 도라지가 있다는 사실과 약효에 대한 각종 기관의 검증된 연구 자료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997년 2천400만원이던 한해 매출액은 1년 만에 10억 2000만원으로 급성장했고 자금사정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도라지에 한평생을 바친 아버지의 장인정신과 새로운 환경에 대한 아들의 합리적 경영마인드가 어우러진 쾌거였다.
‘항공기’ 생산방식 접목
1997년 10월 이 대표이사는 취임과 동시에 28억원에 달하던 부채 정리를 핵심 화두로 본격적인 경영 정상화 작업에 돌입했다.
이를 위해 첫째, ‘기업체질 변화’를 꾀했다.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하고 작업표준을 설정하는 등 작업장 분위기를 바꾸는 데 주력했다. 또한 주먹구구식 운영방식을 표준화하고 시스템화했다. 특히 도라지 생산과정에 항공기 생산 방식의 선진적인 공정 관리 방식을 도입해 품질과 위생을 철저하게 관리했다. 사소한 결함 하나까지 체크하는 항공기 생산공정과 마찬가지로, 전체 생산공정을 치밀하게 설계되고 엄격하게 관리했다.
생산 전에 발행되는 공정관리 기록서는 작업자에 따라, 또는 같은 작업자라도 그날의 건강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작업결과 오차를 최소화한다.
사용된 원료, 작업일시, 작업자 및 기타의 사항을 기록하도록 돼 언제라도 제품의 생산이력추적이 가능하다.
또한 식품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밀폐식 Lay-Out 라인공정 설계, 추출·포장공정 위생설계, 먼지방지 및 제거시설을 갖추는 등 철저한 위생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둘째, 여기에 효율적 인력 운용 및 관리가 보태졌다. 그동안 다양하게 얽혀 있던 친인척 관계를 정리하고 능력 위주 인사 및 공정한 채용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했다. 재무 및 회계 분야 전문가를 공채하고, 업무분장 매트릭스, BOM 경영지표관리 등 삼성의 회계관리 시스템을 장생도라지에 맞도록 수정해 활용했다.
또한 매년 전 직원 워크숍을 통해 경영계획을 공유하는 등 투명경영을 위해 노력했다. 전문가 초청강연, 전 직원 연 1회 해외연수 실시, 업무전임제 등 인재육성에 지속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셋째, 신용확보를 위한 책임경영을 도입했다. 단기적인 처방보다는 장기적인 신용확보를 위해 위험 부담이 없는 안전한 자금을 확보해 악성부채를 해결했다. 보다 공격적인 경영을 하기 위해 주식회사로 등록해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중소기업으로 인정받아 다양한 정부 자금을 지원받는 토대를 마련했다.
넷째,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역량과 자원 확보를 위한 경영자의 능력, 다섯째, 지역사회의 지원과 협조로 실크와 함께 진주시 명물로 부상해 자치단체의 체계적인 지원 및 홍보 등의 도움도 받았다.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육성하자’는 것이 이 대표이사의 경영 구상이었다. 규모를 키우기보다는 내실 있는 경영과 경쟁력 강화로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경영기반을 확보하고 투명한 경영이 무엇보다 필요하겠다는 판단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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