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기의 추억
겨울의 이맘 때 쯤이면 우리들은 동내에서 가장 큰 논에 물고를 막고 물을 대었습니다.
삽자루를 들고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마른 논에 물을 대봐서 개천의 물고를 막아 물길
을 돌리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논에 가득 물이 고이면 논은 자연산 썰매장이 되었고 온 동내 아이들의 신나는
놀이터로 변했답니다.
물론 논에 물을 대기 이전부터 우리들은 각자 자기의 썰매를 장만했는데, 어린 아이들
과 여자 아이들은 두발달린 썰매를 탔지만 동내 개구장이들은 일명 '쌕쌕이'라 불리 던
외발 썰매를 만들어 탔답니다. 일반썰매는 굵은 철사를 각고목에 감아 박아서 얼음위
를 미끄러지게 하였지만 '쌕쌕이'는 외발에 칼날같은 쇠를 박아서 스케이트처럼 얼 음
위를 달려야 하는 썰매라서 칼날같은 쇠조각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지요.
그러나 궁하면 통한다고 가난했던 시절 우리는 못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 때 물통과
거름통은 대부분 둥그런 양철통이었고 밑 바닥 둘레에는 얇은 철판을 두룬 소위'바께
스' 통이었는데 겨울이면 온 동내 바께스 통이 수난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만든 썰매를 논썰매장에 들고가 우리들은 신나게 달렸고 얼음이 얇게 얼은 곳
에 일부러 구멍을 뚫어 고무다리를 만들고는 스릴 넘치게 그 고무다리를 통과하곤 했
는데, 누군가는 그날 반드시 물에 빠졌고 물에 빠지면 메기를 잡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메기를 잡은 친구들은 양지바른 논두렁 잔디와 나무가지들을 모아 불을 지피
고는 젖은 양말과 옷가지를 말려야 했습니다. 그 모닥불에 고구마도 구워먹고 시린손
과 발도 쬐었지만, 그때 막 나왔던 나이론 양말은 불에 그을리면 금방 우그러들고 타
서 그날 해가 저문 저녁이면 결국 혼구멍이 나야 했답니다.
아버지께 야단을 맞고 쫒겨나던 추운 겨울저녁 우리들의 피난처는 늘 굴뚝 모뚱이였
습니다. 굴뚝 모뚱이는 아궁이에 불을 때어 항상 온기가 따스했고 찬바람도 피할 수
있었으며, 저녁상을 물린 울엄니가 굴뚝 모뚱이에서 부엌으로 데려가 부뚜막에 독상
도 차려 주곤 했답니다.
어깨를 들석이며 저녁을 먹는 동안 울엄니는 아궁이에 솔가지와 솔방울로 군불을 지
피며 아마도 이런 말씀을 하셨을 겁니다. '아버지께서 바께스를 못쓰게 만들고 양말
을 태웠다고 회초리를 든 것이 아니라 썰매 타다가 다치고 물에 빠져 동상 걸릴까봐
그렇게 역정을 내신거라고'......
그렇게 혼구녕이 난날 밤이면 하얀눈이 소복히 내렸고 아침 일찍 일어난 우리 형제들
은 양말을 태워먹은 보속으로 앞 뒷마당 눈을 깨끗히 치우고는 동내 친구들과 비료푸
대를 들고 언덕으로 올라가 깔깔 대며 또 다시 옷을 젖셔 돌아오곤 했답니다.
우리들의 어린시절 겨울철은 이렇듯 산과 들에 온통 메기의 추억들이 소복히 쌓였답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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