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글
외국 소설속의 명대사
아모스 33
2006. 10. 18. 18:05
<TV 피플 / 무라카미 하루키>
* 눈 앞에 있는 타인에게 그런 식으로 깨끗하게 존재를 무시당하면, 스스로도 자신이 거기에 존재하는지 아닌지 점차 확실할 수 없게 되는 법이다. 문득 들여다본 자신의 손이, 투명하게 보이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든다. 그것은 어떤 종류의 무력감이다. 주술이다. 자신의 몸이, 자신이란 존재가 점차 희박해져 간다.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 - 고도자본주의 전사 / 무라카미 하루키>
* 내가 말하는 것은 육체적인 일체감이야. 나는 태어나서 그런 일체감은 한번도 느낀 적이 없었어. 난 언제나 혼자였지. 그리고 언제나 어떤 틀 안에서 긴장하고 있었어. 나는 자신을
해방시키고 싶었던거야. 자신을 해방시킴으로써, 지금까지 희미하게 밖에 보이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들었거든. 그녀와 하나로 딱 연결됨으로써, 나는 나 자신을 규제해온 틀을 털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느꼈던거야.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 무라카미 하루키>
*우리의 마음은 돌이 아닙니다. 돌은 언젠가 무너져 내릴지도 모릅니다. 모습과 형태를 잃
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마음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그 형태가 없는 마음을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어디까지나 서로 전할 수 있습니다.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을 춥니다.
<태국에서 일어난 일 / 무라카미 하루키>
*선생님께선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총명하고 강하시고, 하지만 언제나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요. 앞으로 선생님은 서서히 죽음을 향할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답니다. 앞으로 살아가는 일에만 너무 많은 힘을 기울이면 잘 죽을 수가 없게 돼요. 조금씩 방향을 바꿔가지 않으면 안 된답니다. 앞으로 살아가는 일에만 너무 많은 힘을 기울이면 잘 죽을 수가 없게 돼요. 조금씩 방향을 바꿔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살아가는 것과 죽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똑같거든요.
<댄스댄스댄스 / 무라카미 하루키>
* 나는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하지만 어떻게 하면 좋은지를 나는 알고 있다. 아무튼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어떤 일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언제나 그랬다. 수가 막혔을 때에는, 당황하여 움직일 필요는 없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난다. 무슨 일이 다가온다. 가만히 응시하면서, 어스름 속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이기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나는 경험을 통해 이를 배웠다. 이는 언젠가는 반드시 움직인다. '만일 이것이 필요한 것이면 이는 반드시 움직인다.'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 / 무라카미 하루키>
* "왜 도스토예프스키가 도박에 관해서 쓴 것 있지? 그것과 마찬가지야. 즉 말이지, 가능성이주위에 충만해 있을 때, 그것을 그냥 두고 지나간다는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
* 네가 매일 아침 새들을 돌보고 밭일을 하는 것처럼, 나도 매일 아침 내 자신의 태엽을 감고 있다.
* "그런 식으로 고민하지 말아요. 내버려둬도 만사는 흘러갈 방향으로 흘러가고,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사람은 상처 입을 땐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입게 마련이지요."
* 죽음은 삶의 대극(對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잠재해 있는 것이다.
<백년의 고독 / 가르시아 마르케스>
* 사람은 죽어야 할 때 죽는게 아니라 죽을 수 있을 때 죽는거라고 아버님께 말씀 드려주세요.
* 아르까디오는 사랑 때문에 생기는 불안감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았던 방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져 있는, 처음으로 권력의 확실함을 경험 했던, 한쪽이 부서져버린 그 학교에서 형식을 갖춰 죽는다는게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사형이 선고되었을 때 그가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 아니라 삶에 대한 향수였다. 마지막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까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천년의 사랑 / 양귀자>
* 그리고 지금, 나는 깨닫는다. 한없는 그리움이 바로 문제였다고. 그리움이 너무 많으면 마음이 범람한다. 간신히 막아두었던 그리움의 뚝이 무너져 내리면 해야할 말들은 길을 잃고 떠내려 가버리는 것이다.
*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은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내 정신 속에는 그녀와 교통할 수 있는 여러가닥의 줄이 있었다. 글쎄, 그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간절함이 쌓이면, 그리움이 켜켜이 쌓여 키를 돋우면, 그리하여 충만한 사랑으로 영혼의 심지를 돋울줄 아는 자라면 그 줄들을 소유할 수 있을 것이다.
* 세상에 마음을 주지 않으면 마음을 다칠 일도 없다. 상처란 마음을 바깥으로 내보낸 자만이 맛보게 되는 독약이다.
<그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 / 윤대녕>
* 살기 위해 악다구니를 쓰고 때로 사랑 때문에 칼을 휘두르기도 하고 혹은 절망이 목까지 차오를 때 나는 마리아 칼라스를 들으며 혼자 맥주를 마십니다. 사는 동안엔 필경 음치도 노래를 불러야만 하고 또 사는 일은 어쩌면 불가시적인 것에, 영원에 형태와 색깔을 부여하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사람 수만큼 많은 노래들이 그걸 잘 뜻해주고 있습니다.
<봉순이 언니 / 공지영 >
* 왜냐하면 삶에서 사소한 일이 없는 이유는, 매 순간 마주치게 되는 사소한 선택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총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사소한 그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사소한 것의 방향을 트는 삶의 덩어리가 중요하다는걸 내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아는 것이 된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 김형경>
* 사랑은 날조인 자신과 직면하게 되는 가장 에누리 없는 방식이었다. 다행스러운 점은 한번씩 자신의 추악함을 겪고 나면 그 증세가 많이 완화된다는 점이었다. 인혜가 더 많은 사랑을 해보고 싶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인지도 몰랐다. 사랑은 분면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아가는 과정이고, 자기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피나게 투쟁하는 일이고, 그것을 통해 점진적으로 자아가 확장되는 것을 느끼는 일이었다. 한 사람이 머물다 떠날 때마다 내면의 공간도 그만큼 넓어졌고 그 자리에 더 많은 빛과 바람이 드나들었다. 물론 다음 사람을 받아들이는 일도 한결 쉬웠다.
* 동전의 양면론은 얼마나 정확한가. 노출증 환자의 무의식에 있는 진정한 욕망은 관음증이고, 자살자의 내밀한 욕망은 누군가에 대한 살해 욕망이다. 그런 명제들이 이해되었다. 방어 의식과 적개심이, 자존심과 열등감이,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자기비하와 나르시즘이,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그 모든 짝들이 한몸이었다.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 / 윤대녕>
* 나는 그가 사라진 복도를 따라 부신 역광을 받으며 천천히 걸어가 보았다. 그는 화이트샌즈를 외롭게 가로질러, 교문 쪽으로 비틀비틀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두손으로 귀를 막고 그의 이름을 가만히 외쳐보았다. 그러나 그는 교문을 다 나설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사막은 가령 이런 식으로 '발생'한다. 너와 나 사이에 팽팽하게 지속되고 있던 긴장의 끈이 한순간에 끊어지고 그리하여 아득한 거리로 우리가 밀려나면서 그 사이에 황량한 모래 벌판이 가로놓이게 된다.
그 후 우리는 때때로 편지를 주고 받기도 했다. 그러나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성장해 간다는 사실이 왠지 서먹하고 두려운 일로 생각되곤 했다. 오랜 여행에서 돌아와 어항 속의 물고기가 두배 세배로 커진 것을 보았을 때처럼 말이다.
<천국처럼 낯선 / 조경란>
* 공중전화. 단신에게 가는 유일한 길. 사람들은 술만 마시면 공중전화에서 아무에게나 전화를 걸거나 심지어 그 전화통을 부수거나 하는 습벽을 노출한다. 그 사람에게는 공중전화가 일종의 상처이거나 마지막 비상구이기 때문이 아닐까. 요즈음 나는 거리의 공중전화만 보면 사무친다. 내가 걸고 싶은 전화와, 내가 걸지 못한 전화와, 내가 걸었던 전화와, 내가 기다렸던 전화 때문에. 그 전화들 사이로 흘러간 주체할 수 없이 안타까운 시간들 때문에...
<마이너리그 / 은희경>
* 우리들은 서로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마음 깊이 믿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분명한 것은 서로의 인생이 얽혀버렸다는 사실이다. 세상에는 하찮은 인연이 끝까지 따라다니며 알게 모르게 그 사람의 인생을 잠식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우연한 순간의 일이 그 사람 인생의 한 상징이 되어버리는 일도 적지 않다. 드렁칡이 된 사연부터가 그렇듯이 우리의 인생은 죽죽 뻗어가기보다는 그럭저럭 꼬여들었다...(중략)...그러는 동안 우리 모두 공평하게 사십을 넘겼다. 만수산 드렁칡. 삶의 여정이란 것이 사실로도 칡처럼 하잘것없는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이었음을 깨달을 만한 나이가 된 것이다.
그러나 내 인생만은 좀 다른 것이리라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깊은 슬픔 / 신경숙>
* 무슨 일이든 기다릴 수만 있으면, 삶이란 기다림만 배우면 반은 안 것이나 다름없다는데, 은서는 웃었다. 그럴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뭔가를 기다리지. 받아들이기 위해서 죽음까지도 기다리지. 떠날 땐 돌아오기를, 오늘은 내일을, 넘어져서는 일어서기를, 나는 너를.
* "마음속에서 그리움이 사라졌소. 다시는 시를 쓰지 못할 것 같아요. 아무것도 그립지 않으니 마음이 지옥이오. 어린파 연작시를 쓸 때는 개인적으로도 외부적으로도 너무도 어려운 때였지만 그래도 마음은 늘 그리운 것이 있었지. 그것이 시를 쓸 수 있게 했소. 하지만 지금 그것이 끊겼소."
* 하지만 너무 늦었어.
나, 삶을 되찾기엔 너무 멀리 나와버렸어. 무엇이라도 간절하게 원하면 거기에 닿을 수 있다고 믿었지. 하지만 어찌 된 셈인지 그 원하는 것에 닿아지지가 않았어.
너는 너 이외의 다른 것에 닿으려고 하지 말아라. 오로지 너에게로 가는 일에 길을 내렴. 큰 길로 못 가면 작은 길로, 그것도 안되면 그 밑으로라도 가서 너를 믿고 살거라. 누군가를 사랑한다해도 그가 떠나기를 원하면 손을 놓아주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 그것을 받아들여. 돌아오지 않으면 그건 처음부터 너의 것이 아니었다고 잊어버리며 살거라.
<열정의 습관 / 전경린>
* "많은 사람이 사랑을 원하지만 실은 저마다 사랑할 수 있는 정량이 달라요. 미안하지만, 당신은, 미숙해 보여요... 내게는 그렇게 보이는군요. 당신이 진정한 상대를 만나기까지는 많은 편력이 필요할 것만 같아요. 맨 처음의 여자로부터 확인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진정한 상대가 아닐 때는 머무르지 말아야 하는 용기가 필요하죠. 다시 떠나는 용기요. 먼저 반대의 성인 여자라는 일반적인 대상을 향해 당신의 의식을 열어야 할 거예요. 우리는 경험을 통해 사는 것이니까요. 당신은 지금 굳게 닫혀 있어요. 시간만 흘러갈 뿐 생은 시작되지 않아요. 사람들은 사랑을 감정의 상태라고 말하지만, 아니예요. 사랑은 지식이고 무한히 생동하는 방법이고 영혼의 상상력을 삶 속에서 서로에게 실현하는 변태죠. 구체적으로 알지 않으면 사랑할 수도 없어요."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 / 은희경>
* 내 친구 중에는 세상의 인연이 다 번뇌라며 강원도 어느 절로 들어가다가, 시외버스 안에서 군인 옆자리에 앉게 되어 두달 만에 결혼한 애가 있다. 인연을 끊겠다는 사람일수록 마음 깊이에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강하다. 벗어나려고 하면서도 집착의 대상을 찾는 것이 인간이 견뎌야 할 고독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 그녀가 더브(dove) 콤플렉스에 대해 말해주었다. 비둘기 암컷은 수컷한테 그렇게 헌신적이래. 그런데 일찍 죽는단다. 자기도 사랑받고 싶었는데 주기만 하니까 허기때문에 속병이 든 거지. 사람도 그래. 내가 주는 만큼 사실은 받고 싶은 거야. 그러니 한쪽에서 계속 받기만 하는건 상대를 죽이는 직이야. 인연을 맺는다는 건 참 끔찍하지 않니?
<새 / 오정희>
* 세상에 한번 생긴 것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해준 것은 연숙아줌마이다. 아주 먼 옛날의 별빛을 어제사 우리가 보는 것처럼 모든 있었던 것, 지나간 자취는 아주 훗날에라도 아름다운 결과 무늬로, 그것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나타난다.
* 옥상으로부터 팽팽히 당겨진 줄이 그를 조금씩 끌어올렸다. 그 줄이 끊긴다면 앗 하는 순간 그는 떨어져버릴 것이다. 나는 아슬아슬한 마음이 되었다. 남자가 황금빛 속으로 들어갔다. 해가 불구덩이처럼 유리창을 태우고 그 남자를 삼켜버렸다.
* "불 속으로 들어갔어"
우일이는 입을 벌리고 정신없이 그것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 남자는 녹아버릴 것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기찻길 / 홍성원>
* 한 사람을 새로이 친구로 맞는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에게는 삶의 재산이 붙는다는 증거다. 그는 옛날에는 부모들에 의해 많은 사람들은 재산으로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토록 주변에 넘쳐나던 재산들이 지금은 전쟁에 의해 어딘가로 흩어져 그의 곁에서 사라졌다. 그는 이제 남들의 도움이나 보살핌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하나하나 새로운 재산을 만들어가야 한다. 삶에 있어서의 재산이란 단순히 돈이나 물질이 아니다. 삶의 재산은, 그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보여오는 타인들의 무수한 시선과 간섭이다.
<결혼은 미친짓이다 / 이만교>
* (친구의 부음을 전해듣고)
"웃긴다."
"뭐가?"
"이미 까마득히 잊혀진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니까, 도리어 어쨌든 여태 까지는 살아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야."
* 어느 쪽을 선택해도 나는 상관 없는데, 그러나 한가지만 선택해서 행동해야 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사소한 날들의 기록 / 조경란>
* 그리고 그는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문을 읊조렸다.
'제가 변경시킬 수 없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화로운 마음을 주옵시고, 제가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을 위해서는 그것에 도전하는 용기를 주옵시고, 또한 그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내려주옵소서.'
<아홉살 인생 / 위기철>
* 특별한 아이는 욕망이고, 보통아이는 현실이다. 여러분, 혹 알고 계신가. 이 욕망과 현실의 쟁쟁한 줄다리기가 바로 우리네 인생인 것이다.
* 아아, 골방에 갇혀 천하를 꿈꾼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현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욕망은 우리 마음 속에 고이고 썩고 응어리지고 말라비틀어져, 마침내는 오만과 착각과 몽상과 허영과 냉소와 슬픔과 절망과 우울과 우월감과 열등감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때로는 죽음마저 불러오기도 한다. 골방 속에 갇힌 삶...
아무리 활달하게 꿈꾸어도, 골방은 우리의 삶을 푹푹 썩게하는 무덤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구?
- 상상은 자유지만, 자유는 상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옛날 영화를 보러갔다 / 윤대녕>
* "학생도 차츰 알게 될 거예요. 어른이 된다는게 뭔지. 나이를 먹어 간다는게 뭔지. 그게 점점 쓸쓸해져 가는 과정이라는 것도 말예요. 학생 나이 때는 모든게 명암처럼 뚜렷하고 좀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나이가 들다보면 자꾸 예기치 않은 일들이 생겨 거기 휩쓸리게 돼요. 그러다 보면 내가 아주 작은 존재라는 사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모래알 같은 존재라는 걸 알게 될 거예요. 그걸 깨달아 가는게 또한 살아가는 일이라는 것도 말예요. 하지만 그애는 영영 어른이 되지 않을 것 같아요. 누가 가지고 놀다 얼결에 놓쳐버린 풍성 같은 애란 말이죠."
* 밖으로 나오니 날이 차고 어둠이 깊어 있었다. 붉은 달이 프라자 호텔 지붕 위에 비스듬히 걸려 있는게 보였다. 마음의 살이 아픈 자는 시를 쓰고, 마음의 뼈가 아픈 자는 산문을 쓴다고 누가 그랬던가. 그러나 산다는 일은 마음의 뼈와 살 모두가 아프고 쓰라린 것이리라.
<그것은 꿈이였을까 / 은희경>
* 자기의 살아 있는 영혼을 만난다면 어떤 기분일까. 내가 말하자 진은, 황홀하고 두렵겠지라고 대답했었다. 사람은 나약한 존재라서 타인을 원하지. 따지고 보면 사랑이란 건 확고부동한 자기 편, 그러니까 또 다른 자기를 만들려는 일이잖아. 그게 귀찮아서 그냥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고. 사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되니까. 그러나 그들은 사아있는 자기의 영혼을 만날 수 있다면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거야. 살아있는 자기의 영혼을 만난다, 그런 일이 진짜 있을게 뭐람.
* 사랑을 믿지 않을 때는 사랑이 가능해요. 왜냐하면 그 단계에서는 1킬로그램 정도의 사랑을 원하니까요. 그러나 1킬로그램을 얻은 다음의 갈망은 더욱 강렬해져요.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하나이며 영원한 사랑까지를 원하기 마련이죠. 그때부터 사랑이 불가능해지는 것이구요. 사랑이 있다고 믿는 순간 사랑이 사라져요. 진정 사랑을 원하는 순간부터 사랑은 불가능해지듯이요.
* 나는 삶이 <사실>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삶에는 모호하고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더 많다. 나는 건조하고 명백한 <사실> 속에서만 살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처럼 불완전하고 애매한 존재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방식인 모양이다.
* 아내도 알 것이다. 꿈을 꾸지 않게 되면 떨어질 곳도 날아오를 곳도 없어진다. 누군가는 위에서 걷고 또 누군가는 아래에서 걷겠지만 어쨌든 그때부터 반복되는 시간의 평지를 걷는다는 점은 다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걷다보면 죽음과 만난다.
<기차는 7시에 떠나네 / 신경숙>
* " (중략)
격정은 사라져도 편안해지리란 이유로 어서 나이를 먹었으면 했어. 서른이 되면, 혹은 마흔이 되면 수습할 길 없는 좌절감에서는 빠져나오지 않겠는가. 살아가는 가치 기준도 생기고 이리저리 헤매는 마음도 안정이 되지 않겠는가. 그때쯤이면 어느 소용돌이에도 휘말리지 않고 조용한 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지지 않겠는가."
"그런데요?"
"어리석었어. 무슨 생각으로 흘러가는 시간에 기댔을까. 시간은 밤에 문득 잠이 깨서 그저 가만히 누워 날을 새게 하거나, 현재 진행형의 일들을 문득 지워버리고 집으로 돌아와 자버리게 하거나 했을 뿐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평화로워지기는 커녕 이제는 무슨 일을 시작해서 실패를 하면 그 실패의 영향이 내내 앞으로의 인생에 상처로 작용하게 될 것 같아 살얼음판을 딛는 것같이 조심스러워. 어쩌면 인간이란 본래 이런 것일까? 본래 어느 구석이 이렇게 텅 비어있고, 평생을 그 빈 곳에 대한 결핍을 지니고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일까?"
* 가까이 있자꾸나. 흰 모래 위 햇빛 아레 서 있는 미란을 나는 담싹 업었다. 외로웠는가. 미란은 얼굴이 납작해질 정도로 내 등에 얼굴을 대고 문질렀다. 잊으려고 하지 말아라. 생각을 많이 하렴. 아픈 일일수록 그렇게 해야 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잊을 수도 없지. 무슨 일에든 바닥이 있기 않겠니. 언젠가는 발이 거기에 닿겠지. 그때, 탁 치고 솟아오르는 거야.
<괴물 / 이외수>
* 대부분의 인간들은 사랑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면서 살아간다. 사랑이 욕망의 또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사랑은 종족보전의 본능인 성욕이라는 괴물을 거룩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치장하기 위해 조제한 일종의 최음제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최음제에 속아서 알몸이 되고 최음제에 속아서 애무를 하고 최음제에 속아서 성교를 한다. 사랑은 허명이요 착각이다. 사랑이라고 이름 붙여진 일체의 행위들은 종족보전의 본능이 조장하는 번식놀이에 불과하다.
*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인간에게 생존을 의지하고 시골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연에게 생존을 의지한다. 송을태의 눈에는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존이 시골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존보다 몇 배나 위태롭고 허술해 보인다.
* 누구나 아플 때는 외로움을 느낀다. 누구나 외로움을 느낄 때는 기다림을 배운다. 그리고 누구나 기다림을 배울 때는 마음의 문을 열어둔다. 어느날 그녀는 이필우의 전화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남자는 떨어진 거리에서 바라보면 편안한 존재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보면 불안한 존재였다.
<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 / 전경린>
* 생명이 나의 가랑이를 벌리고 삽입하던 순간을 기억한다. 생명이 나를 숙주로 삼아 씨앗을 발아하고, 성장하고 증식하고, 그리고 꽃 피어나고 지쳐 스러지고, 소멸하여 떠나간다. 나를 유린하고 나를 소화하고 나로부터 뽑혀져 나가는 이 거대한 성기. 그리고 정적, 영원, 본연의 공허, 황무지, 그것이 나인거다. 그토록 먼 바닥인 내가, 그런 내가 어째서 자신을 수선화라고 주장했을까. 왜 나는 착종된 유사의지 속에서 존재감을 한사코 고집하였던 것일까... 이제 다시는, 욕망을 회복할 수 없을 것 같다.
* "사랑이란 동시성을 잃고 시간 밖에서 생각하면 늘 그렇듯이 의심스러운 거요. 그건 어느 시기에 두 사람의 발이 한데 묶였던 어떤 사건일 뿐인지도 몰라. 발이 풀리고 난 뒤에 생각하면 그런 공속은 아무런 실제성도 없어요. 에테르처럼 증발되어 버리지. 두 사람이 사랑했는데도 추억 속엔 자신 빡에 없어. 자신조차도 어딘가 변형되고 과장되어 있어. 서글픈 모노드라마지."
* "세상엔 규정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 언어나 관념은 현실을 못 따라가지. 그래서 자기만의 감수성이 필요한거야. 말로 할 수 없는 것은 그냥 느끼는 거지."
* 나는 고개를 저었다. 유경은 내가 그날 이후 줄곧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면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유경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서는 어쩌겠다는 말인가...그러자 알고 싶은게 뭔지 알 수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말없이 술을 마셨다.
"어쨌든 저마다 스스로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는 것 아닐까요? 그것을 정직하게 찾지 않으면 스스로 회복할 수 없어요. 그것이 시작이죠."
<견딜 수 없는, 미쳐버리고 싶은 / 밀란 쿤데라>
* 사실 그는 그녀를 만나기 전의 여자들에게는 거칠게 군 편이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무자비한 모습을 보이거나 냉혹하지는 않았지만, 한때 거친 남자가 되기를 몹시 원했던건 사실이다. 물론 철없던 시절의 욕망이었다. 대개 유치한 욕망들은 성숙해지면서 유혹에 저항하는 법이지만, 때로 나이가 들어서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어떤 역할을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을 경우 유치한 욕망은 재빨리 그런 기회를 이용하려 한다.
<종이시계 / 앤 타일러>
* 그렇지만 매기는 잊지 않았다. 종종 뚫을 수 없는 유리막과 같은 아이러의 불만스러운 표정을 보면서 그녀는 이 지상에서 진정한 변화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남편은 바꿀 수 있어도 상황은 바꿀 수 없다. 사람은 바꿀 수 있었도 상황의 본질은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 세상은 마치 저 유원지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작고 푸른 찻잔 같고, 사람들은 모두 원심력에 의해 제자리에 고정되어 앉아있을 뿐이다.
<독일인의 사랑 / 막스 뮐러>
* 두 인간의 영혼이 만나는 것이, 소용돌이치는 열풍이 모았다가 훑어 버리는 저 사막의 모래알의 만남과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행운이 마주치게 한 우리의 영혼들을 꼭 붙잡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영혼들은 우리를 위해 점지된 것이니까. 그것을 위해 살고 싸우며 죽어갈 용기만 갖고 있다면, 어떤 힘두 우리에게서 그 혼을 뺏아가지 못하리라.
* 인간의 마음에 생겨나는 최초의 공포는 신에게서 버림받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생활은 그 공포를 몰아낸다. 바로 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된 인간들이 외로움에 빠진 우리를 위로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위로와 사랑마저 떠나가면, 우리는 실로 신과 인간 모두에게서 버림 받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절감하게 된다.
* 아, 인간은 왜 이다지도 삶을 유회하는 것일까. 매일 매일이 마지막 날일 수도 있으며, 잃
어버린 시간은 곧 영원의 상실임을 생각하지 않고, 왜 이렇듯 자신이 행할 수 있는 최선의
것과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하루하루 미룬단 말인가.
<정체성 / 밀란 쿤데라>
* 우정이란 기억력의 원활한 작용을 위해 인간에게 필요 불가결한 것이야. 과거를 기억하고 그것을 항상 가지고 다니는 것은 아마도 흔히 말하듯 자아의 총체성을 보존하기 위한 필요 조건일 거야. 자아가 위축되지 않고 그 부피를 간직하기 위해서는 화분에 물을 주듯 추억에도 물을 주어야만 하며 이 물주기가 과거의 증인, 말하자면 친구들과 규칙적인 접촉을 요구하는 거야. 그들은 우리의 거울이야. 우리의 기억인 셈이지. 우리가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이란 우리가 자아를 비춰볼 수 있도록 그들이 이따금 거울의 윤을 내주는 것일 뿐이야.
<향수 / 밀란 쿤데라>
* 그리스어로 귀환은 '노스토스 nostos'이다. 그리스어로 '알고스 algos'는 괴로움을 뜻한다. 노스토스와 알고스의 합성어인 '노스탈지' 즉 향수란 돌아가고자 하는 채워지지 않는 욕구에서 비롯된 괴로움이다.
<바베트의 만찬 / 이자크 디네센>
* 이제 난 깨달았어요. 사람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겠어요. 그리고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철저히 고독하며 사람들과 섞일 수 없는 이방인이라는 사실도 깨달았어요. 난, 난 전혀 두렵지 않아요.
* 아마도 모든 생명체들 가운데 새가 천사와 가장 닮았을거야. 경전에도 나오잖아. 천상과 지상을 오가는 모든 것은 신을 섬기며 천사도 그러하니라, 라고. 새는 하늘과 땅 사이를 오가는 동물이야. 또 이런 말도 있지. 그들은 거만하게 우쭐거리는 것으로 자신의 일을 더럽히지 않고, 노래 부르며 신께 부여받은 일을 한다고. 이것 역시 새가 하는 일이야. 새들이 하는 이 모든 일을 본받으려 노력한다면, 천사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을꺼야.
* 우리 물고기는 사방의 지탱을 받아요.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믿고 그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몸을 맡기죠.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든, 어떤 길을 가든, 위대한 바닷물은 우리를 위해 모양을 바꾼답니다.
우리는 손이 없기에 아무것도 만들 수가 없지요. 그래서 신의 우주 속에 있는 그 어느 것도 쓸데없이 바꿔놓으려는 욕망을 품지 않아요. (중략) 우리는 밑에서 위를 올려다보며 우주의 질서를 읽지요.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 로맹 가리>
* 새들은 왜 먼 바다의 섬들을 떠나 리마에서 북쪽으로 십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이 해변에서 죽는지 아무도 그에게 설명해주지 못했다. 새들은 더 남쪽도 더 북쪽도 아닌, 길이 삼 킬로미터의 바로 이곳 좁은 모래사장 위에 떨어졌다. 새들에게는 이곳이 믿는 이들이 영혼을 반환하려 간다는 인도의 성지 바라나시 같은 곳일 수도 있었다. 새들은 진짜 비상을 위해 이곳으로 와서 자신들의 몸뚱이를 던져 버리는 것일까.
* 과학은 모든 면에서 인간을 제압하고 있다. (중략) 영혼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야 할 터. 그것이야말로 영혼이 과학에 당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머잖아 학자들은 영혼의 정확한 부피와 밀도와 비상속도를 계산해낼 것이다.
* 바다란 소란스러우면서도 고요한 살아있는 형이상학, 바라볼 때마다 자신을 잊게 해주고 가라앉혀주는 광막함, 다가와 상처를 핥아주고 체념을 부추기는 닿을 수 있는 무한이었다.
<유언 / 산도르 마라이>
* "나는 평생 당신만을 사랑했소. 그러다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소. 빌마가 가로챈 편지만을 말하는게 아니오. 모든게 편지 때문만은 아닐 것이오. 사실 당신은 이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지 않았소. 반박하지 말아요. 그저 사랑하는 것으로 다가 아니오. 용감하게 사랑해야 하오. 도둑이나 앞날의 계획, 천상과 지상의 그 어떤 율법도 방해하지 못하도록 사랑해야 하오. 우리는 서로를 용감하게 사랑하지 않았고... 그게 바로 문제였고, 그건 당신의 잘못이었소. 남자들이 사랑에서 보이는 용기는 하잘것 없기 때문이오. 사랑, 그것은 당신네 여자들의 작품이오. 사랑할 때 당신들은 위대하오. 그런데 당신은 실패했소. 그리고 당신이 실패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모든 것도 물거품이 되고 의무와 임무, 알맹이 없는 삶이 되고 말았소. 남자들이 사랑에 책임이 있다는 말은 맞지 않소. 당신들이 영웅적으로 사랑해야 하오. 그런데 당신은 여자로서 할 수 있는 최악의 행동을 했소. 당신은 자존심이 상해 도망쳤소. 이제 내 말을 믿소?"
<비둘기 / 파트리크 쥐스킨트>
* 보행은 마음을 달래줬다. 걷는 것에는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어떤 힘이 있었다. 규칙적으로 발을 하나씩 데어놓고, 그와 동시에 팔을 리듬에 맞춰 휘젓고, 숨이 약간 가빠 오고, 맥박도 조금 긴장하고, 방향을 결정할 때와 중심을 잡는 데 필요한 눈과 귀를 사용하고, 살갗에 스치는 바람의 감각을 느끼고-그런 모든 것들이 설령 영혼이 형편없이 위축되고 손상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다시 크고 넓게 만들어 주어서-마침내 정신과 육체가 모순 없이 서로 조화롭게 되는 일련의 현상들이었다.
* 눈 앞에 있는 타인에게 그런 식으로 깨끗하게 존재를 무시당하면, 스스로도 자신이 거기에 존재하는지 아닌지 점차 확실할 수 없게 되는 법이다. 문득 들여다본 자신의 손이, 투명하게 보이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든다. 그것은 어떤 종류의 무력감이다. 주술이다. 자신의 몸이, 자신이란 존재가 점차 희박해져 간다.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 - 고도자본주의 전사 / 무라카미 하루키>
* 내가 말하는 것은 육체적인 일체감이야. 나는 태어나서 그런 일체감은 한번도 느낀 적이 없었어. 난 언제나 혼자였지. 그리고 언제나 어떤 틀 안에서 긴장하고 있었어. 나는 자신을
해방시키고 싶었던거야. 자신을 해방시킴으로써, 지금까지 희미하게 밖에 보이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들었거든. 그녀와 하나로 딱 연결됨으로써, 나는 나 자신을 규제해온 틀을 털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느꼈던거야.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 무라카미 하루키>
*우리의 마음은 돌이 아닙니다. 돌은 언젠가 무너져 내릴지도 모릅니다. 모습과 형태를 잃
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마음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그 형태가 없는 마음을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어디까지나 서로 전할 수 있습니다.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을 춥니다.
<태국에서 일어난 일 / 무라카미 하루키>
*선생님께선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총명하고 강하시고, 하지만 언제나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요. 앞으로 선생님은 서서히 죽음을 향할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답니다. 앞으로 살아가는 일에만 너무 많은 힘을 기울이면 잘 죽을 수가 없게 돼요. 조금씩 방향을 바꿔가지 않으면 안 된답니다. 앞으로 살아가는 일에만 너무 많은 힘을 기울이면 잘 죽을 수가 없게 돼요. 조금씩 방향을 바꿔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살아가는 것과 죽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똑같거든요.
<댄스댄스댄스 / 무라카미 하루키>
* 나는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하지만 어떻게 하면 좋은지를 나는 알고 있다. 아무튼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어떤 일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언제나 그랬다. 수가 막혔을 때에는, 당황하여 움직일 필요는 없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난다. 무슨 일이 다가온다. 가만히 응시하면서, 어스름 속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이기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나는 경험을 통해 이를 배웠다. 이는 언젠가는 반드시 움직인다. '만일 이것이 필요한 것이면 이는 반드시 움직인다.'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 / 무라카미 하루키>
* "왜 도스토예프스키가 도박에 관해서 쓴 것 있지? 그것과 마찬가지야. 즉 말이지, 가능성이주위에 충만해 있을 때, 그것을 그냥 두고 지나간다는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
* 네가 매일 아침 새들을 돌보고 밭일을 하는 것처럼, 나도 매일 아침 내 자신의 태엽을 감고 있다.
* "그런 식으로 고민하지 말아요. 내버려둬도 만사는 흘러갈 방향으로 흘러가고,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사람은 상처 입을 땐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입게 마련이지요."
* 죽음은 삶의 대극(對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잠재해 있는 것이다.
<백년의 고독 / 가르시아 마르케스>
* 사람은 죽어야 할 때 죽는게 아니라 죽을 수 있을 때 죽는거라고 아버님께 말씀 드려주세요.
* 아르까디오는 사랑 때문에 생기는 불안감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았던 방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져 있는, 처음으로 권력의 확실함을 경험 했던, 한쪽이 부서져버린 그 학교에서 형식을 갖춰 죽는다는게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사형이 선고되었을 때 그가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 아니라 삶에 대한 향수였다. 마지막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까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천년의 사랑 / 양귀자>
* 그리고 지금, 나는 깨닫는다. 한없는 그리움이 바로 문제였다고. 그리움이 너무 많으면 마음이 범람한다. 간신히 막아두었던 그리움의 뚝이 무너져 내리면 해야할 말들은 길을 잃고 떠내려 가버리는 것이다.
*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은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내 정신 속에는 그녀와 교통할 수 있는 여러가닥의 줄이 있었다. 글쎄, 그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간절함이 쌓이면, 그리움이 켜켜이 쌓여 키를 돋우면, 그리하여 충만한 사랑으로 영혼의 심지를 돋울줄 아는 자라면 그 줄들을 소유할 수 있을 것이다.
* 세상에 마음을 주지 않으면 마음을 다칠 일도 없다. 상처란 마음을 바깥으로 내보낸 자만이 맛보게 되는 독약이다.
<그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 / 윤대녕>
* 살기 위해 악다구니를 쓰고 때로 사랑 때문에 칼을 휘두르기도 하고 혹은 절망이 목까지 차오를 때 나는 마리아 칼라스를 들으며 혼자 맥주를 마십니다. 사는 동안엔 필경 음치도 노래를 불러야만 하고 또 사는 일은 어쩌면 불가시적인 것에, 영원에 형태와 색깔을 부여하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사람 수만큼 많은 노래들이 그걸 잘 뜻해주고 있습니다.
<봉순이 언니 / 공지영 >
* 왜냐하면 삶에서 사소한 일이 없는 이유는, 매 순간 마주치게 되는 사소한 선택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총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사소한 그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사소한 것의 방향을 트는 삶의 덩어리가 중요하다는걸 내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아는 것이 된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 김형경>
* 사랑은 날조인 자신과 직면하게 되는 가장 에누리 없는 방식이었다. 다행스러운 점은 한번씩 자신의 추악함을 겪고 나면 그 증세가 많이 완화된다는 점이었다. 인혜가 더 많은 사랑을 해보고 싶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인지도 몰랐다. 사랑은 분면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아가는 과정이고, 자기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피나게 투쟁하는 일이고, 그것을 통해 점진적으로 자아가 확장되는 것을 느끼는 일이었다. 한 사람이 머물다 떠날 때마다 내면의 공간도 그만큼 넓어졌고 그 자리에 더 많은 빛과 바람이 드나들었다. 물론 다음 사람을 받아들이는 일도 한결 쉬웠다.
* 동전의 양면론은 얼마나 정확한가. 노출증 환자의 무의식에 있는 진정한 욕망은 관음증이고, 자살자의 내밀한 욕망은 누군가에 대한 살해 욕망이다. 그런 명제들이 이해되었다. 방어 의식과 적개심이, 자존심과 열등감이,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자기비하와 나르시즘이,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그 모든 짝들이 한몸이었다.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 / 윤대녕>
* 나는 그가 사라진 복도를 따라 부신 역광을 받으며 천천히 걸어가 보았다. 그는 화이트샌즈를 외롭게 가로질러, 교문 쪽으로 비틀비틀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두손으로 귀를 막고 그의 이름을 가만히 외쳐보았다. 그러나 그는 교문을 다 나설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사막은 가령 이런 식으로 '발생'한다. 너와 나 사이에 팽팽하게 지속되고 있던 긴장의 끈이 한순간에 끊어지고 그리하여 아득한 거리로 우리가 밀려나면서 그 사이에 황량한 모래 벌판이 가로놓이게 된다.
그 후 우리는 때때로 편지를 주고 받기도 했다. 그러나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성장해 간다는 사실이 왠지 서먹하고 두려운 일로 생각되곤 했다. 오랜 여행에서 돌아와 어항 속의 물고기가 두배 세배로 커진 것을 보았을 때처럼 말이다.
<천국처럼 낯선 / 조경란>
* 공중전화. 단신에게 가는 유일한 길. 사람들은 술만 마시면 공중전화에서 아무에게나 전화를 걸거나 심지어 그 전화통을 부수거나 하는 습벽을 노출한다. 그 사람에게는 공중전화가 일종의 상처이거나 마지막 비상구이기 때문이 아닐까. 요즈음 나는 거리의 공중전화만 보면 사무친다. 내가 걸고 싶은 전화와, 내가 걸지 못한 전화와, 내가 걸었던 전화와, 내가 기다렸던 전화 때문에. 그 전화들 사이로 흘러간 주체할 수 없이 안타까운 시간들 때문에...
<마이너리그 / 은희경>
* 우리들은 서로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마음 깊이 믿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분명한 것은 서로의 인생이 얽혀버렸다는 사실이다. 세상에는 하찮은 인연이 끝까지 따라다니며 알게 모르게 그 사람의 인생을 잠식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우연한 순간의 일이 그 사람 인생의 한 상징이 되어버리는 일도 적지 않다. 드렁칡이 된 사연부터가 그렇듯이 우리의 인생은 죽죽 뻗어가기보다는 그럭저럭 꼬여들었다...(중략)...그러는 동안 우리 모두 공평하게 사십을 넘겼다. 만수산 드렁칡. 삶의 여정이란 것이 사실로도 칡처럼 하잘것없는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이었음을 깨달을 만한 나이가 된 것이다.
그러나 내 인생만은 좀 다른 것이리라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깊은 슬픔 / 신경숙>
* 무슨 일이든 기다릴 수만 있으면, 삶이란 기다림만 배우면 반은 안 것이나 다름없다는데, 은서는 웃었다. 그럴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뭔가를 기다리지. 받아들이기 위해서 죽음까지도 기다리지. 떠날 땐 돌아오기를, 오늘은 내일을, 넘어져서는 일어서기를, 나는 너를.
* "마음속에서 그리움이 사라졌소. 다시는 시를 쓰지 못할 것 같아요. 아무것도 그립지 않으니 마음이 지옥이오. 어린파 연작시를 쓸 때는 개인적으로도 외부적으로도 너무도 어려운 때였지만 그래도 마음은 늘 그리운 것이 있었지. 그것이 시를 쓸 수 있게 했소. 하지만 지금 그것이 끊겼소."
* 하지만 너무 늦었어.
나, 삶을 되찾기엔 너무 멀리 나와버렸어. 무엇이라도 간절하게 원하면 거기에 닿을 수 있다고 믿었지. 하지만 어찌 된 셈인지 그 원하는 것에 닿아지지가 않았어.
너는 너 이외의 다른 것에 닿으려고 하지 말아라. 오로지 너에게로 가는 일에 길을 내렴. 큰 길로 못 가면 작은 길로, 그것도 안되면 그 밑으로라도 가서 너를 믿고 살거라. 누군가를 사랑한다해도 그가 떠나기를 원하면 손을 놓아주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 그것을 받아들여. 돌아오지 않으면 그건 처음부터 너의 것이 아니었다고 잊어버리며 살거라.
<열정의 습관 / 전경린>
* "많은 사람이 사랑을 원하지만 실은 저마다 사랑할 수 있는 정량이 달라요. 미안하지만, 당신은, 미숙해 보여요... 내게는 그렇게 보이는군요. 당신이 진정한 상대를 만나기까지는 많은 편력이 필요할 것만 같아요. 맨 처음의 여자로부터 확인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진정한 상대가 아닐 때는 머무르지 말아야 하는 용기가 필요하죠. 다시 떠나는 용기요. 먼저 반대의 성인 여자라는 일반적인 대상을 향해 당신의 의식을 열어야 할 거예요. 우리는 경험을 통해 사는 것이니까요. 당신은 지금 굳게 닫혀 있어요. 시간만 흘러갈 뿐 생은 시작되지 않아요. 사람들은 사랑을 감정의 상태라고 말하지만, 아니예요. 사랑은 지식이고 무한히 생동하는 방법이고 영혼의 상상력을 삶 속에서 서로에게 실현하는 변태죠. 구체적으로 알지 않으면 사랑할 수도 없어요."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 / 은희경>
* 내 친구 중에는 세상의 인연이 다 번뇌라며 강원도 어느 절로 들어가다가, 시외버스 안에서 군인 옆자리에 앉게 되어 두달 만에 결혼한 애가 있다. 인연을 끊겠다는 사람일수록 마음 깊이에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강하다. 벗어나려고 하면서도 집착의 대상을 찾는 것이 인간이 견뎌야 할 고독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 그녀가 더브(dove) 콤플렉스에 대해 말해주었다. 비둘기 암컷은 수컷한테 그렇게 헌신적이래. 그런데 일찍 죽는단다. 자기도 사랑받고 싶었는데 주기만 하니까 허기때문에 속병이 든 거지. 사람도 그래. 내가 주는 만큼 사실은 받고 싶은 거야. 그러니 한쪽에서 계속 받기만 하는건 상대를 죽이는 직이야. 인연을 맺는다는 건 참 끔찍하지 않니?
<새 / 오정희>
* 세상에 한번 생긴 것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해준 것은 연숙아줌마이다. 아주 먼 옛날의 별빛을 어제사 우리가 보는 것처럼 모든 있었던 것, 지나간 자취는 아주 훗날에라도 아름다운 결과 무늬로, 그것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나타난다.
* 옥상으로부터 팽팽히 당겨진 줄이 그를 조금씩 끌어올렸다. 그 줄이 끊긴다면 앗 하는 순간 그는 떨어져버릴 것이다. 나는 아슬아슬한 마음이 되었다. 남자가 황금빛 속으로 들어갔다. 해가 불구덩이처럼 유리창을 태우고 그 남자를 삼켜버렸다.
* "불 속으로 들어갔어"
우일이는 입을 벌리고 정신없이 그것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 남자는 녹아버릴 것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기찻길 / 홍성원>
* 한 사람을 새로이 친구로 맞는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에게는 삶의 재산이 붙는다는 증거다. 그는 옛날에는 부모들에 의해 많은 사람들은 재산으로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토록 주변에 넘쳐나던 재산들이 지금은 전쟁에 의해 어딘가로 흩어져 그의 곁에서 사라졌다. 그는 이제 남들의 도움이나 보살핌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하나하나 새로운 재산을 만들어가야 한다. 삶에 있어서의 재산이란 단순히 돈이나 물질이 아니다. 삶의 재산은, 그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보여오는 타인들의 무수한 시선과 간섭이다.
<결혼은 미친짓이다 / 이만교>
* (친구의 부음을 전해듣고)
"웃긴다."
"뭐가?"
"이미 까마득히 잊혀진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니까, 도리어 어쨌든 여태 까지는 살아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야."
* 어느 쪽을 선택해도 나는 상관 없는데, 그러나 한가지만 선택해서 행동해야 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사소한 날들의 기록 / 조경란>
* 그리고 그는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문을 읊조렸다.
'제가 변경시킬 수 없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화로운 마음을 주옵시고, 제가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을 위해서는 그것에 도전하는 용기를 주옵시고, 또한 그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내려주옵소서.'
<아홉살 인생 / 위기철>
* 특별한 아이는 욕망이고, 보통아이는 현실이다. 여러분, 혹 알고 계신가. 이 욕망과 현실의 쟁쟁한 줄다리기가 바로 우리네 인생인 것이다.
* 아아, 골방에 갇혀 천하를 꿈꾼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현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욕망은 우리 마음 속에 고이고 썩고 응어리지고 말라비틀어져, 마침내는 오만과 착각과 몽상과 허영과 냉소와 슬픔과 절망과 우울과 우월감과 열등감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때로는 죽음마저 불러오기도 한다. 골방 속에 갇힌 삶...
아무리 활달하게 꿈꾸어도, 골방은 우리의 삶을 푹푹 썩게하는 무덤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구?
- 상상은 자유지만, 자유는 상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옛날 영화를 보러갔다 / 윤대녕>
* "학생도 차츰 알게 될 거예요. 어른이 된다는게 뭔지. 나이를 먹어 간다는게 뭔지. 그게 점점 쓸쓸해져 가는 과정이라는 것도 말예요. 학생 나이 때는 모든게 명암처럼 뚜렷하고 좀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나이가 들다보면 자꾸 예기치 않은 일들이 생겨 거기 휩쓸리게 돼요. 그러다 보면 내가 아주 작은 존재라는 사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모래알 같은 존재라는 걸 알게 될 거예요. 그걸 깨달아 가는게 또한 살아가는 일이라는 것도 말예요. 하지만 그애는 영영 어른이 되지 않을 것 같아요. 누가 가지고 놀다 얼결에 놓쳐버린 풍성 같은 애란 말이죠."
* 밖으로 나오니 날이 차고 어둠이 깊어 있었다. 붉은 달이 프라자 호텔 지붕 위에 비스듬히 걸려 있는게 보였다. 마음의 살이 아픈 자는 시를 쓰고, 마음의 뼈가 아픈 자는 산문을 쓴다고 누가 그랬던가. 그러나 산다는 일은 마음의 뼈와 살 모두가 아프고 쓰라린 것이리라.
<그것은 꿈이였을까 / 은희경>
* 자기의 살아 있는 영혼을 만난다면 어떤 기분일까. 내가 말하자 진은, 황홀하고 두렵겠지라고 대답했었다. 사람은 나약한 존재라서 타인을 원하지. 따지고 보면 사랑이란 건 확고부동한 자기 편, 그러니까 또 다른 자기를 만들려는 일이잖아. 그게 귀찮아서 그냥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고. 사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되니까. 그러나 그들은 사아있는 자기의 영혼을 만날 수 있다면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거야. 살아있는 자기의 영혼을 만난다, 그런 일이 진짜 있을게 뭐람.
* 사랑을 믿지 않을 때는 사랑이 가능해요. 왜냐하면 그 단계에서는 1킬로그램 정도의 사랑을 원하니까요. 그러나 1킬로그램을 얻은 다음의 갈망은 더욱 강렬해져요.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하나이며 영원한 사랑까지를 원하기 마련이죠. 그때부터 사랑이 불가능해지는 것이구요. 사랑이 있다고 믿는 순간 사랑이 사라져요. 진정 사랑을 원하는 순간부터 사랑은 불가능해지듯이요.
* 나는 삶이 <사실>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삶에는 모호하고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더 많다. 나는 건조하고 명백한 <사실> 속에서만 살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처럼 불완전하고 애매한 존재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방식인 모양이다.
* 아내도 알 것이다. 꿈을 꾸지 않게 되면 떨어질 곳도 날아오를 곳도 없어진다. 누군가는 위에서 걷고 또 누군가는 아래에서 걷겠지만 어쨌든 그때부터 반복되는 시간의 평지를 걷는다는 점은 다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걷다보면 죽음과 만난다.
<기차는 7시에 떠나네 / 신경숙>
* " (중략)
격정은 사라져도 편안해지리란 이유로 어서 나이를 먹었으면 했어. 서른이 되면, 혹은 마흔이 되면 수습할 길 없는 좌절감에서는 빠져나오지 않겠는가. 살아가는 가치 기준도 생기고 이리저리 헤매는 마음도 안정이 되지 않겠는가. 그때쯤이면 어느 소용돌이에도 휘말리지 않고 조용한 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지지 않겠는가."
"그런데요?"
"어리석었어. 무슨 생각으로 흘러가는 시간에 기댔을까. 시간은 밤에 문득 잠이 깨서 그저 가만히 누워 날을 새게 하거나, 현재 진행형의 일들을 문득 지워버리고 집으로 돌아와 자버리게 하거나 했을 뿐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평화로워지기는 커녕 이제는 무슨 일을 시작해서 실패를 하면 그 실패의 영향이 내내 앞으로의 인생에 상처로 작용하게 될 것 같아 살얼음판을 딛는 것같이 조심스러워. 어쩌면 인간이란 본래 이런 것일까? 본래 어느 구석이 이렇게 텅 비어있고, 평생을 그 빈 곳에 대한 결핍을 지니고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일까?"
* 가까이 있자꾸나. 흰 모래 위 햇빛 아레 서 있는 미란을 나는 담싹 업었다. 외로웠는가. 미란은 얼굴이 납작해질 정도로 내 등에 얼굴을 대고 문질렀다. 잊으려고 하지 말아라. 생각을 많이 하렴. 아픈 일일수록 그렇게 해야 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잊을 수도 없지. 무슨 일에든 바닥이 있기 않겠니. 언젠가는 발이 거기에 닿겠지. 그때, 탁 치고 솟아오르는 거야.
<괴물 / 이외수>
* 대부분의 인간들은 사랑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면서 살아간다. 사랑이 욕망의 또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사랑은 종족보전의 본능인 성욕이라는 괴물을 거룩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치장하기 위해 조제한 일종의 최음제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최음제에 속아서 알몸이 되고 최음제에 속아서 애무를 하고 최음제에 속아서 성교를 한다. 사랑은 허명이요 착각이다. 사랑이라고 이름 붙여진 일체의 행위들은 종족보전의 본능이 조장하는 번식놀이에 불과하다.
*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인간에게 생존을 의지하고 시골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연에게 생존을 의지한다. 송을태의 눈에는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존이 시골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존보다 몇 배나 위태롭고 허술해 보인다.
* 누구나 아플 때는 외로움을 느낀다. 누구나 외로움을 느낄 때는 기다림을 배운다. 그리고 누구나 기다림을 배울 때는 마음의 문을 열어둔다. 어느날 그녀는 이필우의 전화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남자는 떨어진 거리에서 바라보면 편안한 존재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보면 불안한 존재였다.
<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 / 전경린>
* 생명이 나의 가랑이를 벌리고 삽입하던 순간을 기억한다. 생명이 나를 숙주로 삼아 씨앗을 발아하고, 성장하고 증식하고, 그리고 꽃 피어나고 지쳐 스러지고, 소멸하여 떠나간다. 나를 유린하고 나를 소화하고 나로부터 뽑혀져 나가는 이 거대한 성기. 그리고 정적, 영원, 본연의 공허, 황무지, 그것이 나인거다. 그토록 먼 바닥인 내가, 그런 내가 어째서 자신을 수선화라고 주장했을까. 왜 나는 착종된 유사의지 속에서 존재감을 한사코 고집하였던 것일까... 이제 다시는, 욕망을 회복할 수 없을 것 같다.
* "사랑이란 동시성을 잃고 시간 밖에서 생각하면 늘 그렇듯이 의심스러운 거요. 그건 어느 시기에 두 사람의 발이 한데 묶였던 어떤 사건일 뿐인지도 몰라. 발이 풀리고 난 뒤에 생각하면 그런 공속은 아무런 실제성도 없어요. 에테르처럼 증발되어 버리지. 두 사람이 사랑했는데도 추억 속엔 자신 빡에 없어. 자신조차도 어딘가 변형되고 과장되어 있어. 서글픈 모노드라마지."
* "세상엔 규정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 언어나 관념은 현실을 못 따라가지. 그래서 자기만의 감수성이 필요한거야. 말로 할 수 없는 것은 그냥 느끼는 거지."
* 나는 고개를 저었다. 유경은 내가 그날 이후 줄곧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면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유경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서는 어쩌겠다는 말인가...그러자 알고 싶은게 뭔지 알 수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말없이 술을 마셨다.
"어쨌든 저마다 스스로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는 것 아닐까요? 그것을 정직하게 찾지 않으면 스스로 회복할 수 없어요. 그것이 시작이죠."
<견딜 수 없는, 미쳐버리고 싶은 / 밀란 쿤데라>
* 사실 그는 그녀를 만나기 전의 여자들에게는 거칠게 군 편이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무자비한 모습을 보이거나 냉혹하지는 않았지만, 한때 거친 남자가 되기를 몹시 원했던건 사실이다. 물론 철없던 시절의 욕망이었다. 대개 유치한 욕망들은 성숙해지면서 유혹에 저항하는 법이지만, 때로 나이가 들어서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어떤 역할을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을 경우 유치한 욕망은 재빨리 그런 기회를 이용하려 한다.
<종이시계 / 앤 타일러>
* 그렇지만 매기는 잊지 않았다. 종종 뚫을 수 없는 유리막과 같은 아이러의 불만스러운 표정을 보면서 그녀는 이 지상에서 진정한 변화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남편은 바꿀 수 있어도 상황은 바꿀 수 없다. 사람은 바꿀 수 있었도 상황의 본질은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 세상은 마치 저 유원지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작고 푸른 찻잔 같고, 사람들은 모두 원심력에 의해 제자리에 고정되어 앉아있을 뿐이다.
<독일인의 사랑 / 막스 뮐러>
* 두 인간의 영혼이 만나는 것이, 소용돌이치는 열풍이 모았다가 훑어 버리는 저 사막의 모래알의 만남과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행운이 마주치게 한 우리의 영혼들을 꼭 붙잡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영혼들은 우리를 위해 점지된 것이니까. 그것을 위해 살고 싸우며 죽어갈 용기만 갖고 있다면, 어떤 힘두 우리에게서 그 혼을 뺏아가지 못하리라.
* 인간의 마음에 생겨나는 최초의 공포는 신에게서 버림받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생활은 그 공포를 몰아낸다. 바로 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된 인간들이 외로움에 빠진 우리를 위로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위로와 사랑마저 떠나가면, 우리는 실로 신과 인간 모두에게서 버림 받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절감하게 된다.
* 아, 인간은 왜 이다지도 삶을 유회하는 것일까. 매일 매일이 마지막 날일 수도 있으며, 잃
어버린 시간은 곧 영원의 상실임을 생각하지 않고, 왜 이렇듯 자신이 행할 수 있는 최선의
것과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하루하루 미룬단 말인가.
<정체성 / 밀란 쿤데라>
* 우정이란 기억력의 원활한 작용을 위해 인간에게 필요 불가결한 것이야. 과거를 기억하고 그것을 항상 가지고 다니는 것은 아마도 흔히 말하듯 자아의 총체성을 보존하기 위한 필요 조건일 거야. 자아가 위축되지 않고 그 부피를 간직하기 위해서는 화분에 물을 주듯 추억에도 물을 주어야만 하며 이 물주기가 과거의 증인, 말하자면 친구들과 규칙적인 접촉을 요구하는 거야. 그들은 우리의 거울이야. 우리의 기억인 셈이지. 우리가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이란 우리가 자아를 비춰볼 수 있도록 그들이 이따금 거울의 윤을 내주는 것일 뿐이야.
<향수 / 밀란 쿤데라>
* 그리스어로 귀환은 '노스토스 nostos'이다. 그리스어로 '알고스 algos'는 괴로움을 뜻한다. 노스토스와 알고스의 합성어인 '노스탈지' 즉 향수란 돌아가고자 하는 채워지지 않는 욕구에서 비롯된 괴로움이다.
<바베트의 만찬 / 이자크 디네센>
* 이제 난 깨달았어요. 사람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겠어요. 그리고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철저히 고독하며 사람들과 섞일 수 없는 이방인이라는 사실도 깨달았어요. 난, 난 전혀 두렵지 않아요.
* 아마도 모든 생명체들 가운데 새가 천사와 가장 닮았을거야. 경전에도 나오잖아. 천상과 지상을 오가는 모든 것은 신을 섬기며 천사도 그러하니라, 라고. 새는 하늘과 땅 사이를 오가는 동물이야. 또 이런 말도 있지. 그들은 거만하게 우쭐거리는 것으로 자신의 일을 더럽히지 않고, 노래 부르며 신께 부여받은 일을 한다고. 이것 역시 새가 하는 일이야. 새들이 하는 이 모든 일을 본받으려 노력한다면, 천사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을꺼야.
* 우리 물고기는 사방의 지탱을 받아요.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믿고 그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몸을 맡기죠.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든, 어떤 길을 가든, 위대한 바닷물은 우리를 위해 모양을 바꾼답니다.
우리는 손이 없기에 아무것도 만들 수가 없지요. 그래서 신의 우주 속에 있는 그 어느 것도 쓸데없이 바꿔놓으려는 욕망을 품지 않아요. (중략) 우리는 밑에서 위를 올려다보며 우주의 질서를 읽지요.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 로맹 가리>
* 새들은 왜 먼 바다의 섬들을 떠나 리마에서 북쪽으로 십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이 해변에서 죽는지 아무도 그에게 설명해주지 못했다. 새들은 더 남쪽도 더 북쪽도 아닌, 길이 삼 킬로미터의 바로 이곳 좁은 모래사장 위에 떨어졌다. 새들에게는 이곳이 믿는 이들이 영혼을 반환하려 간다는 인도의 성지 바라나시 같은 곳일 수도 있었다. 새들은 진짜 비상을 위해 이곳으로 와서 자신들의 몸뚱이를 던져 버리는 것일까.
* 과학은 모든 면에서 인간을 제압하고 있다. (중략) 영혼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야 할 터. 그것이야말로 영혼이 과학에 당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머잖아 학자들은 영혼의 정확한 부피와 밀도와 비상속도를 계산해낼 것이다.
* 바다란 소란스러우면서도 고요한 살아있는 형이상학, 바라볼 때마다 자신을 잊게 해주고 가라앉혀주는 광막함, 다가와 상처를 핥아주고 체념을 부추기는 닿을 수 있는 무한이었다.
<유언 / 산도르 마라이>
* "나는 평생 당신만을 사랑했소. 그러다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소. 빌마가 가로챈 편지만을 말하는게 아니오. 모든게 편지 때문만은 아닐 것이오. 사실 당신은 이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지 않았소. 반박하지 말아요. 그저 사랑하는 것으로 다가 아니오. 용감하게 사랑해야 하오. 도둑이나 앞날의 계획, 천상과 지상의 그 어떤 율법도 방해하지 못하도록 사랑해야 하오. 우리는 서로를 용감하게 사랑하지 않았고... 그게 바로 문제였고, 그건 당신의 잘못이었소. 남자들이 사랑에서 보이는 용기는 하잘것 없기 때문이오. 사랑, 그것은 당신네 여자들의 작품이오. 사랑할 때 당신들은 위대하오. 그런데 당신은 실패했소. 그리고 당신이 실패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모든 것도 물거품이 되고 의무와 임무, 알맹이 없는 삶이 되고 말았소. 남자들이 사랑에 책임이 있다는 말은 맞지 않소. 당신들이 영웅적으로 사랑해야 하오. 그런데 당신은 여자로서 할 수 있는 최악의 행동을 했소. 당신은 자존심이 상해 도망쳤소. 이제 내 말을 믿소?"
<비둘기 / 파트리크 쥐스킨트>
* 보행은 마음을 달래줬다. 걷는 것에는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어떤 힘이 있었다. 규칙적으로 발을 하나씩 데어놓고, 그와 동시에 팔을 리듬에 맞춰 휘젓고, 숨이 약간 가빠 오고, 맥박도 조금 긴장하고, 방향을 결정할 때와 중심을 잡는 데 필요한 눈과 귀를 사용하고, 살갗에 스치는 바람의 감각을 느끼고-그런 모든 것들이 설령 영혼이 형편없이 위축되고 손상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다시 크고 넓게 만들어 주어서-마침내 정신과 육체가 모순 없이 서로 조화롭게 되는 일련의 현상들이었다.